
- 장르 : 드라마, 코미디
- 감독 : 라세 할스트롬
- 출연 : 안톤글랜제리어스(잉마) / 토마스 본 브롬슨(군나르)
스웨덴 영화인 '개 같은 내 인생'은 레이다 욘손의 자전적 소설을 라세 할스트롬이 각색하고 연출했다고 하네요. 1985년 작품인데 두고두고 보는 명작, 성장영화입니다.
부모의 부재와 트라우마
유리 가가린보다 먼저 우주선에 태워진 생명체가 있지요. 소련의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예요. 주인공 잉마는 줄곧 라이카와 자신을 동일시해요. 내레이션으로 ‘우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우주선에 태워졌지만, 라이카는 그런 삶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요. 잉마의 삶도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우주선에 태워져 살아 돌아오지 못한 라이카처럼 ‘부모의 부재’라는 삶에 태워진 인생이라는 거지요. 잉마도 라이카처럼 부모의 부재를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잉마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아이예요. 아이들의 실험 대상이 되어 병에 자신의 성기를 끼워 넣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요, 형의 장난에 오줌을 지리기도 하지요. 어수룩한 아이들이 그렇듯 잉마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우유 컵을 제대로 들지 못해 컵을 들고 떨다가 흘리거나 쏟기도 하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상행동을 하지요. 그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현실 때문에 생긴 것이지요.
그러나 잉마는 트라우마와 맞섭니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우유를 마실 때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흘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그러다가 그 자리를 벗어나 우유를 마시게 되지요. 잉마는 그렇게 성장통을 겪으며 자랍니다. 성장통의 한가운데에는 엄마의 죽음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내내 잉마는 내레이션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요. 라이카의 죽음, 오토바이 타는 사람의 죽음 등등. 아무튼 죽음과 함께 영화 내내 등장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요 바로 '성'이에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성장통
사실 사춘기 아이에게는 '성'이 가장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늙어 죽어가면서도 성욕만은 왕성한 할아버지라든가, 여자의 나체를 조각하는 예술가라든가, 여자 친구 사가를 보면서 잉마는 ‘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지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등장인물들이 참 따뜻하고 코믹하고 생명력이 있어요. 우리 어린 시절에도 동네에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잔잔한 웃음이 멈추질 않았어요. 아, 그리고 유리 공장도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켰어요. 개 같은 내 인생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겪었던 성장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예요.
'개 같은 내 인생'의 의미
우리말이 주는 뉘앙스 때문일 거예요. 스웨덴에서는 개 같은 내 인생이라는 말이 좋은 의미라는데도 어쩐지 시니컬하게 느껴져요. 당최 좋은 의미로 몰입이 안 돼요. 그래서 한번 바꾸어 보았어요. '꽃 같은 내 인생'
이렇게 바꾸어 보니, 주인공 잉마의 삶이 정말 꽃 같은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기네요.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처럼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개 같은 내 인생'도 반어적 표현으로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이 수용소에서 억압받으며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보면 인생이 아름답긴, 개뿔,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것처럼 '개 같은 내 인생'도 어쩌면 우리말이 주는 뉘앙스처럼 정말 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삶은 참혹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들여다보면 정말 아름다운 것처럼, 개 같은 내 인생도 겉으로 드러나 잉마의 삶은 가엾지만, 힘든 삶을 꿋꿋이 헤쳐 나가는 잉마의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인생은 아름다워'나 '개 같은 내 인생은 중의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영화를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