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범한 주부와 비현실적인 인물들 

다소 엉뚱하고 황당한 일본 영화 한 편을 즐겁게 보았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주인공 스즈메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모두 비현실 속의 인물처럼 보입니다.

  • 쿠자쿠 : 스즈메의 오랜 친구이며, 주운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닙니다.
  • 벤치 할머니 : 10년 넘게 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 두부공장 주인 : 뭔지 모르지만 싸서 샀는데, 미끌거리는 게 너무 좋다고 시시덕거립니다.
  • 옆집 제과점 남자 : 두부 공장 주인에게 사랑 고백을 했어요. 발음이 이상합니다.
  • 하수도 아저씨 : 고무호스를 돌리고 다니면서 누군가와 교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 라면 가게 주인 : 어중간한 라면만 끓여댑니다.
  • 이 외에도 쿠기타니 부부, 스파이를 잡는 공안부 직원들...

 

하나같이 현실 속 인물 같지가 않습니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나 둘러보니 이런 황당한 사람들은 없네요. 영화를 보면서 '뭐야, 이거?' 하면서 공감할 수 없는 분이라면,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과 비현실적인 상항 전개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인물과 사건에는 코믹함이 묻어있고, 그 코믹함이 한낱 공허한 웃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어서 영화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거북이에게 먹이 주는 일이 크나큰 일상인 스즈메.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거북이가 의미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라 할 수 있어요. 스즈메는 일상이 너무 평범하여 지루함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감마저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내가 안 보이는 걸까?' 하면서요.

 

영화 초반에 스즈메가 거북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는 장면은 참 공감 가는 장면입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지요. 지루한 나의 일상을 정말로 속 시원하게 던져버리고 싶은 때가 있잖아요.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다 집어던져서 아작내고 싶은 순간! 그러나 거북이 등에 펴지던 낙하산처럼, 내 마음에도 낙하산이 퍼져서 결국 내가 내 손으로 그 거북이를 받아내곤 하잖아요. 자기가 던지는 거북이를 못 받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스즈메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나왔습니다.

 

 

2. 일상탈출을 꿈꾸는 스즈메

그런 스즈메가 동경하는 대상은 바로 특별한 삶을 사는 쿠자쿠입니다. 쿠자쿠는 프랑스 남자를 만나서 에펠탑이 보이는 프랑스에서 가는 게 꿈입니다. 영화는 평범한 삶을 사는 스즈메와 특별한 삶을 사는, 혹은 특별한 삶을 꿈꾸는 쿠자쿠를 계속 비교하며서 전개됩니다.

 

스즈메는 쿠자쿠가 뭐든지 자기보다 잘 하고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정말 쿠자쿠는 늘 스즈메보다 한발 앞서갑니다. 스즈메가 재능으로는 쿠자쿠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곤 돈을 벌기로 하지요. 드디어 큰돈을 벌어 그 돈으로 쿠자쿠에게 한 턱 쏘려고 했는데, 세상에... 무심하기도 하지!! 쿠자쿠는 경매로 돈을 벌어 머리에 돈을 꽂고 나타나기까지 하잖아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입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삶이란 이렇게 한 발 다가서면 한 발 물러서는 것일까요?

 

아무튼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자신 없어하던 스즈메가 드디어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갑니다. 정말 스파이만이 찾아낼 수 있는 손톱만 한 크기의 모집광고를 스즈메가 용케 찾아낸 거지요. 스즈메가 찾아간 곳에는 쿠기타니 부부가 살고 있어요.

 

그들은 스즈메에게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자 바로 스파이로 채용합니다.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스파이로 적격이라는 거지요. 스파이는 남의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스즈메에게 어떤 나라의 일본 담당 스파이라고 임명하며 오천만 원을 줍니다. 스파이가 하는 일은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평범하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잠복하고 있는 거래요. 

 

그때부터 스즈메는 일부러 평범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어제와 똑같은 평범한 일상인데 이젠 평범한 것이 아닌 게 되지요. 의미부여가 된 것입니다. 삶에 활력이 생기고 급기야 저녁에는 몹시 피곤한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어느 날, 쿠자쿠는 오히려 스즈메를 부러워합니다.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할까요? 스즈메가 쿠자쿠에게 너는 이것저것 많이 하잖아, 하니까 무언가를 많이 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해요.

 

어쨌든 영화는 스파이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은 채,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스즈메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관객은 대체 스파이의 목적은 무얼까, 하는 것만 생각하며 영화를 따라갑니다. 이것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그러나 결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라면 가게 남자, 두부 공장 주인도 스파이이며, 어이없게도 십 년 넘도록 개미에게 먹이만 주던 벤치 할머니까지 스파이이며, 그들은 벤치 아래 문이 열고 사라집니다. 스즈메는 스파이 자격이 중지되어 그들과 함께 떠날 수 없지요. 

 

 

3. 다시 일상으로

비로소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스즈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삶의 과정에 대한 것을 보여줍니다. 스파이의 목적은 드러나지 않고 스파이 활동, 그것이 비록 평범하게 잠복하고 있기라 해도 어쨌든 활동, 살아가는 과정만을 보여 줍니다. 삶이란 과정이다,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라면 가게 주인의 모습도 참 인상적입니다. 쿠자쿠가 마이크를 들고 제대로 된 라면을 만들라고 소리치자 그 큰 남자가 멈칫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습니다. 그 큰 남자가 상처받는 모습이라니, 한편 코믹하지만 한편 제 가슴 한쪽이 짜르르 아픈 게 참 안쓰러웠어요. 그 남자는 특별한 라면을 만들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어중간한 맛의 라면을 만들고 있었던 거지요. 그도 바로 스파이였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장면도 참 인상적이에요. 쿠자쿠는 자신의 소원대로 프랑스 남자와 함께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쿠자쿠는 스파이 죄명을 쓰고 프랑스 감옥에서 살게 되는 거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꿈꾸던 삶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어요. 나 또한 죽도록 사랑했던 남자를 만나 살고 있는데, 이 삶이 가끔 감옥으로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내가 원하던 삶이 감옥이 되어 나를 옥죄는 것은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도 한번 해 보았습니다. 하하.

 

엔딩 장면은 스즈메가 여행 가방을 끌고 쿠자쿠를 구하러 떠나는 장면인데요, 그것도 생각해 보면 의미가 있어요. 스즈메가 평범한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쿠자쿠는 특별한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평범한 삶이 특별한 삶을 구원하는 게 되는 건가요? 좀 작위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나니 좀 위로가 됩니다. 나같은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걸 깨닫게 해 주니까요.

 

그런데 평번한 삶을 사는 스즈메에게 그렇게 작은 스파이 광고가 어떻게 눈에 띄었을까요? 그것도 좀 필연성이 있는 것 같아요. 맨 처음 장면, 스즈메가 책장을 후루루 넘기던 장면 기억하세요? 그 책의 두께를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무지하게 두꺼운 책이잖아요. 책장이 다 넘어갔을 때, 나만의 비밀 일기라는 글자가 뜨잖아요. 그 책이 바로 스즈메의 일기였던 거지요. 그렇게나 두꺼운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애가 참 강한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삶에 대해 늘 생각하는 사람일 테지요. 그런 사람 눈에 그 작은 스파이 광고가 보인 것은 당연하다고 느껴집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제목은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가 거북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느리다'입니다. 그러니까 느리다고 생각하는 거북이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데요 제목에서 우리가 깜빡 속은 게 있어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한 얘기니까요. 물속에서 사는 거북이가 빨리 헤엄치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의외로 두 발로 잘 걸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당연한 얘기를 왜 새삼스럽게 하는 걸까요? 그건 평범한 일상도 한번 새삼스럽게 바라보아라, 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거북이가 상징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지요.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 대한 편견은 지루하다가 되는 거고요. 그러니까 제목에 그대로 대입시켜 보면, 평범한 일상은 의외로 지루하지 않다가 되겠네요. 영화를 이렇게 읽고 나니까 참 기분이 좋습니다. 내 삶이 지루한 게 아니니까요. 랄랄라~~